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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획>무형문화재 원류를 찾아서(17) -- 전남일보
작성자 토기나라 (ip:)
  • 작성일 2006-12-29 11:5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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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진옹기 만들기 50년 정윤석씨
<기획>무형문화재 원류를 찾아서(17)
흙 맛 오롯이 살린 '숨쉬는 저장창고'

입력날짜 : 2006. 11.23

간장ㆍ된장ㆍ김치 등 발효식품이 주류를 이룬 우리나라의 음식은 전통적으로 저장을 통해 이어져 왔다. 이 때 필수적인 생활용기가 바로 옹기였다. 그러나 과학문명이 발달하고 서구문명이 들어와, 식생활과 주택공간이 바뀌면서 옹기수요는 점차 줄어들었다. 특히 플라스틱의 등장은 전통옹기를 사양길로 접어들게 한 전환점이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제작되던 옹기는 점차 자취를 감추었고, 몇몇 장인들의 외로운 작업으로 명맥만이 유지되고 있을 뿐이다. 드넓은 강진만이 마을 앞으로 펼쳐진 강진군 칠량면 봉황리도 옹기의 역사와 함께 부침을 거듭했다.

40~50년전만해도 강진옹기는 전국적 명성을 얻고 있었다. 강진읍 영포와 칠량면 봉황, 사부마을에서 쏟아져 나온 옹기는 전용옹기선에 실려 강진만을 통해 군산ㆍ부산ㆍ강원도 등 국내 뿐만 아니라 일본ㆍ중국까지 실려나갔다.

당시 봉황마을에서만 25호가 5개의 가마를 연중 풀가동했을 정도였다. 600년을 이어온 강진옹기도 플라스틱이 등장하면서 급격히 쇠퇴했다.

600년간 이어온 전통 플라스틱에 밀려 고사


10여년 전 인근 사부ㆍ영포옹기는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다행히 봉황옹기만은 '50년 외길인생' 정윤석(66ㆍ전남도지정 무형문화재 제37호 옹기장)씨에 의해 그 명맥을 유지돼 왔다.

"내가 시작한 지 50년이 넘었고. 16살부터 시작 했응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옹기장사를 했던 탓에 일찍이 옹기를 자주 접했던 정씨는 같은 마을에 살던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으로부터 옹기 만드는 법을 배웠다.

"강진에 옹기가 유명한 것은 질좋은 점토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지. 찰흙 60%, 모래 20%, 백토 20% 정도로 혼합된 점토가 필요한데 칠량과 강진읍 일원에는 이같은 점토가 풍부하게 매장돼 있었지요."

요즘은 그 양이 줄어들어 나주 산포와 왕곡에서 점토를 구입, 강진서 채취한 점토와 혼합해 사용한다. 질기고(잘 깨지지 않고) 음식이 쉽사리 변하지 않는 황금비율의 점토질을 맞추기 위해서다.

"완전히 재래 방식으로만 제작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80% 이상은 옛것 그대로 만들고 있어요." 흙을 이기고 메치는 힘든 작업은 기계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음식  숙성도  잘되고 상하지 않는 게 특징"

그러나 제작기법은 전통방식인 체바퀴타래미기법을 고집하고 있다. 타지역에선 대부분 기계를 사용해 물레를 돌리지만 그는 지금도 발로 물레를 돌려가며 손으로 제작한다. 온몸을 사용하다보니 갈수록 힘에 부치지만 옹기장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작은 몸부림이다. 특히 가정에서 장 담글때 사용하는 대독(120ℓ 이상)을 제작할 때면 이만저만 힘든 일이 아니다.

유약을 제작하는 과정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섬세함이 배어있다. 투박한 손마디에서 어떻게 이런 잿물이 나올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

유약의 주재료는 약토와 잿물이다. 약토는 봉황리 인근 야산에서 풀을 제거하고 한삽 깊이의 흙을 채취해 사용한다. 철분성분을 많이 함유한 이 약토와 콩대ㆍ소나무 목재를 태우고 난 재를 1대1 또는 4대3 정도로 혼합한 뒤 채로 3~4차례 걸러내 사용한다. 유약을 바른 뒤 가마에서 섭씨 1250도로 5일간 구워내면 질박한 강진옹기가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강진옹기는 평평하지(몸체 중간부분이 볼록하다). 윗지방 옹기는 뾰족하면서 길쭉하지만 강진옹기는 공기접촉을 많게 해서 따뜻한 기온에서도 음식이 잘 숙성되고 상하지 않도록 만들어졌지요.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숨어있는 기술이지요."

옹기는 크기에 따라 이름을 달리한다. 방두이(20ℓ)ㆍ에뚜배기(30ℓ)ㆍ댕구천안(40ℓ)ㆍ조쟁이(50ℓ)ㆍ어중독(100ℓ)ㆍ중독ㆍ대독 순으로 커진다.

"후회는 없소.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이것으로 집안식구들 먹여살렸고, 요즘엔 전남도나 정부에서 지원도 해주니 나름대로 보람을 느끼고 살고 있어요. 특히 높은 사람들이 '좋은 일 한다'고 칭찬해주고 외지인들이 '역시 옹기가 최고'라고 할 때면 힘이 납니다." 그의 예기(藝技)는 군 제대후 가업을 잇기 위해 뛰어든 셋째아들 정영균(39)씨에 의해 전수되고 있다.

글=강덕균 기자 dkkang@jnilbo.com
사진=프리랜서 박정현


■ 옹기 제작과정

'발물레'로 다듬어  5일간  구워  완성
찰흙 수축 불구 모래가 숨통 만들어

강진 칠량과 나주 산포ㆍ왕곡에서 채취한 점토는 흙을 이기는 기계와 진공토련기를 거치면서 차지게 만들어 진다. 진공토련기에서 옹기의 크기에 맞게 차진 점토를 빼내 30㎝정도로 잘라낸뒤, 납작하고 길쭉하게 하는 '타래미작업'을 거친다. 밑바닥용 점토는 둥글게, 옹기 몸체용은 납작한 직사각형 모양으로 만든다.

옹기제작 원판(발물레)에 다듬어진 밑바닥용 점토를 놓고 발로 물레를 돌려가며 옹기밑을 다듬는다. 여기에 직사각형의 몸체용 점토를 세워 원형의 몸체를 만들어간다. 옹기의 몸체가 세워지는 작업(수래질)은 나무로 만든 '수래'와 '조막'을 옹기 밖과 안에 마주대고 두드리며 고정을 시키면서 늘려나간다. 옹기의 크기에 따라 몸체용 점토 갯수를 달리한다.  최대 10개까지 올려 붙이기도 한다. 수래질을 통해 크기에 맞게 몸체용 점토를 붙이고 나면 본격적인 옹기모양을 만드는 홀태작업을 진행한다.

플라스틱 등 신문명의 도입으로 전통 옹기가 사라져가고 있지만 정윤석 명인은 지난 50년간 고집스럽게 옛 방식 그대로 우리 고유의 옹기제작에 몰두해오고 있다.

바깥홀태와 안홀태를 몸체 안과 바깥에 대고 물레를 돌려가며 옹기의 모양을 완성한다. 옹기모양을 볼록하게 하거나 길쭉하게 하는 작업은 홀태작업을 통해 이뤄진다. 홀태작업은 몸체를 매끈하게 하는 기능도 한다.

'탱탱' 옹기소리가 나면서 옹기의 모양이 갖춰가면서 주둥이부분을 만드는 작업(시욱쓴다)에 들어간다. 줄가죽에 물을 묻혀 부드럽고 섬세한 주둥이 모양을 만든다. 시욱을 쓰고 나면 돌출된 옹기의 바닥부분을 깎아낸다(밑가세 작업). 몸체와 주둥이 부분이 완성되면 목질이라는 말랑말랑한 흙으로 옹기 몸체의 윗부분에 띠줄을 두른다. 보통 한개의 띠줄을 두르지만 큰 독일 경우엔 두줄을 대기도 한다. 경상도에선 몸체의 중간부분에 띠를 두르지만 강진옹기는 몸체 윗부분에 띠를 두르는 것이 특징이다. 형체를 갖춘 옹기는 가마에서 5일간 구워내 세상 빛을 본다.

 옹기 숨구멍의 비밀 - 찰흙 수축 불구 모래가 숨통 만들어

옹기는 숨을 쉰다고 한다. 옹기 표면의 미세한 구멍을 통해 공기가 통하기 때문에 음식이 쉽게 상하지 않고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다. 그 비밀은 옹기제작의 주원료인 점토에 있다. 강진옹기는 찰흙 60%, 모래 20%, 백토 20%의 비율로 혼합해 사용한다.

숨구멍은 찰흙과 모래의 조화속에서 만들어진다. 먼저 점토를 이용해 옹기형체를 만들어 말리게 되면 찰흙은 13~15%가량 수축하지만 모래는 변함없어 모래알이 울퉁불퉁 불거진다. 이 상태의 옹기에 유약을 발라 섭씨 1250도로 가열하면 찰흙은 또 수축하지만 모래는 이 때도 거의 변화가 없다.

이 때 옹기 표면에 땀구멍과 같은 미세한 숨구멍이 나타난다. 청자나 백자는 모래를 완전히 제거해 찰흙만으로 제작하기 때문에 숨구멍이 없는 것과 비교된다. 옹기의 숨구멍은 워낙 작아서 음식물이 흘러나오지는 않지만 그 사이로 공기는 소통하게 된다.

토기나라  http://www.toginar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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